그대여! 세상을 보기위해 다시한번 나와라!
대학사회에서 학우들의 이반과 학생회의 이반이라는 화두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문제를 풀어 나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넓은 주제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지 너무나도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과 같이 그대여! 세상을 보기위해 다시한번 나와라!라는 한 작가의 귀절을 가지고 본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때문에 주저하는가?
학우들의 이반, 학생회의 이반 이라는 것은 현재의 서강 학생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근본적으로 이런 구조가 생성될 수 밖에 없는 원인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야하겠습니다.
지금의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많이들 접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은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와닿는 형태로 또는 암묵적으로 생활내에서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형태로 느껴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직접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간에 지금보다는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불을보듯 자명합니다. 그것은 97년 대선 이후 한국 사회는 서구 유럽에서 제기되어진 신자유주의가 200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지기때문입니다. 이 신자유주의는 영국에서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의 영국병 치료를 위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운동 등에 대한 탄압을 강행하는 방향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자유주의 그 당시 불기 시작한 시장 개방통합 바람을 타고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논리로 전세계를 강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의 끝을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 세계화라는 논리로 우리 사회에 침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속에서 서구 유럽의 노동자와 중산층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문제가 유럽 사회에 다시 대두되게 대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래리 엘리언트는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식 경제정책은 주로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정책이었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데 실패하였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총체적 부는 증가했을지는 모르지만 빈부 격차는 더 늘어나게 되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기업의 대량 해고, 공장 폐업, 공장 해외 이전 등 반노동적 정책이 등장하고 있으며 실업의 증대, 임시직 증대, 중산층 약화라는 결과를 산출하게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이런 경쟁의 논리속에서 한 학자는 다음 같은 것들을 제기합니다. 21세기에는 전인류의 3분의 2가 실업에 직면하게 되고 고용된 사람중 3분의 1은 임시직, 파트타임 형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세계적 흐름속에서 지금의 서강땅에서도 취업난, 고시열품(CPA, 사법고시, 외무고시, 행정고시)이 불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경쟁의 대오속에서 뒤처지지않게 자신의 실력들을 쌓아가면서 그 지배적 흐름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만의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형태로 전개 되고있으며, 점점더 서강의 구성원들을 파편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서강이라는 대학사회는 점차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단지 전세계적인 흐름에만 원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학생사회에서 어느 정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 학생 자치 단체들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용해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물론 이것이 모두 학생회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학생회의 잘못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서강을 살펴봅시다. 현재의 서강안에서 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한 과를 살펴보죠. 그 과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학회가 몰락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학생회가 학회의 도움없이 구성될 수 없었는가? 학생회는 학회 중심이아니라 학우들의 조합적 이익을 지켜주는 단체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학생회 체계는 학회위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회가 몰락한 과의 경우 순차적으로 학생회의 와해라는 형태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학회가 학생회를 구성하는 성원들의 재생산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구조라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학생회의 기반은 철저히 학회가 아니라 학우들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단위에서 학회가 가장많은 성원들을 유지하고 있고 가장 먼저 대중 사업들을 쉽게 수행할 단위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본래의 학회는 학우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맞추어 학회내의 목적의식들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공간이지 않습니까? 이런 학회가 단순히 학생회를 구성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학회 본연의 위상들이 퇴색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서강의 학생 사회내에서 존재하는 의사소통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의 영국의 인민은 일년에 단한번 자유롭다는 말처럼 서강에서도 학우들은 일년에 단 15초동안 서강학생사회의 주인이 됩니다.. 서강의 의사결정에 있어 학우들은 자신의 의결권을 모두 학생회에 위임 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의 형태로 우리의 눈앞에 나타날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가 학우들과 학생회 조직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의사소통의 구조는 어떠한가? 흔히 의사소통의 구조라고 하지만 서강땅안에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기제는 대자보, 연서, 총투표, 언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학우들의 사소한 생각이나 고민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습니다. 앞써 말한 방식들은 어찌보면 거대한 고민들을 담아내는데 어느 정도 효율성이 있겠지만, 미소 담론까지 담아내는데는 역부족이겠지요.
또한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불신은 학생회내의 투명성들이 제대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 토론회 기획단에서 실시한 설문작업의 1차 표본조사의 경우 대부분의 학우들은 자신의 의사가 학생회에 제대로 반영되어지지않는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학생회에 대한 불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불신이 형성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학생회의 비민주성의 탓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투명성들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투명성의 부재는 학생회의 비밀주의를 낳게했고, 학우들에게는 정보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학우들이 학생회에서 이반하는 하나의 큰 기제가 되었음이 자명합니다.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본다면, 서강은 학부제 2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학부제가 실시된 이후, 이전에서도 아웃사이더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과행사나 과일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우들을 일컬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 학우가 과일에 관심이 없어서 였을지도 모르지만 더 엄밀히 말해서, 그들이 활동할 공간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후, 과 내에는 잘노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헤쳐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공개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아웃사이더들은 과내에 정착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물론 잘노는 사람들을 탓하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학생회의 일들이 주로 잘노는 사람들이나 학회 위주로 돌아가고 있을때, 아웃사이더들은 어색함으로 인해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되고 만다는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웃사이더들은 학생회로부터 소외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학생회와 학우들간의 괴리가 생기는 과정과 동일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학부제 실시 이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애정을 가지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과라는 소속감 자체가 소멸하기때문이고, 선배들의 경우는 이 후배들이 정말 자신의 후배일까라는 의식 속에서 선후배간의 정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후배들 역시 자신의 섹을 맡는 선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선택하려는 전공의 선배들과 더 친해질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뜻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섹내에 선배들의 이기심도 하나의 문제겠지요. 우리섹이면 당연히 우리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이기심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선배들의 경우 자신의 후배들을 잘 챙겨줄수도 있겠지만 신입생의 경우 그것이 오히려 타 선배와 만남을 어색하게 만드는 기제가 될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학생사회내에 또다른 이반을 가져오는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단지 학생회의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또 다른 원인의 한 축으로 학우들을 들 수 있습니다. 학우들은 선거시에 어느 정도 입장을 지닌 단체를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선택의 자유는 누리고있지만, 참여의 자유를 한 단체에 위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단체도 자신들의 의사를 100%반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견해와 무관하게 나타나는 학생회의 모습에 그 누구도 반론을 자신있게 제기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그리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흔히 일컬어지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참여가 있어야지만 민주주의를 꽃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강안에서는 참여보다는 선택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대표자가 아니라 자신의 권한을 위임한 대리인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위임 집정제를 의미합니다. 보다 학생회를 잘이끌수 있다는 사람에게 학생회의 모든 사무를 위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임해 놓고서는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학생회의 운영이나 대학사회에서 어느정도 구심전이 되는 학생회의 존립 기반이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학우들이 학생회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학우들의 무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앞써 지적한 서강의 구조에도 일정 부분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서강의 구성원들이 학생회에서 멀어지는 또다른 이유는 학생회가 모든 민원을 해결해 주는 민원 봉사실이라고 여기는데 또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물론 학우들의 조합주의적 원리에 의해 구성되는 것은 당연하나,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요구들을 수용해 줄 만큼 학생회는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회 역시 일정 책임들이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다해주는 양 선거시에 공약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의 미실행은 학우들에게 또다른 불신감만을 증폭시켜주는 기제가 될 뿐입니다.
알바트로스의 날개는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알바트로스라는 작은새는 그 몸짓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도 그 새가 대양을 건너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새는 비록 몸짓은 작지만 그 커다란 형태의 장애물을 넘어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학생운동은 학생사회에 그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이라는 것은 대중의 지지 아래에 그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 학생운동은 학우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습니까? 이 물음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라고 대답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학생운동은 과거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그간의 투표율이 바로 자신들에 대한 동의의 지반이 된다는 것과 자신들의 행위가 올바르다면 학우들의 의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과 과거 학생운동과의 연계성, 다시말해 적자의식의 탈피와 자신들만이 옳다는 의식들로부터의 환상을 깨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학우들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즉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학우들의 동의의 기반을 넓힐 수 있느냐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해법이 80년대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없다라고 보는 것이 더욱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타당할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학생회라는 것을 대중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아니 대다수 자기편의 운동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이반을 극으로 달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점은 바로 이 자리의 우리에게 학생회의 존재의 필연성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즉 자신과 별 관계없는 학생회가 굳이 내가 사는 공간에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것이지요. 서강 학생 사회내 대다수 학생들은 학생회는 대 사회 참여를 위해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우들의 복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만 지금까지의 학생회의 모습은 그보다는 오히려 대 사회적 투쟁에 더욱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생회가 학우들에게는 자신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존재라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학생운동은 학우대중으로부터 무관심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50%선을 조금 넘고 있는 총학생회의 투표율이나 각종 총학생회 사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학우들의 관심 저하, 또 최근 연대 사태와 한총련 출범식에서 보여주고 있는 학생운동진영과 대중들의 괴리감과 그것에 따른 문제점들이 학생운동 내에 하나의 커다란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변모하고 있는 학생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전에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무엇이고, 대학이라는 제도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대학생은 으레 진보적이어야 하고, 당연히 운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 학생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른 활동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대학의 구조적인 측면과 주체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사회의 분석의 핵심은 바로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무엇이었는가 ? 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60, 70년대의 대학생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일까? 아마도 흠모의 대상,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의 유일한 계급 상승의 통로, 출세의 담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고, 하나의 경사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온 그 구성원은 다양했고, '성적'이라는 것이 거의 유일한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출신 배경은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러한 사회 특성상 각각의 속한 출신 배경이 주는 영향력보다는 일종의 특권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식인', '엘리트'로서의 동질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의 문제의식들은 특권과 책임을 지닌 존재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 였고 이러한 경향은 '민중적 지식인'이라는 독특한 부류를 등장시켰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배경, 출신들을 버리고 사회의 부조리와 대항하고 스스로 자신의 사상에 따라 새로운 지위를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대학생과는 달리 사회의 지적인 선도세력의 일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국가적 정치적 사안에 대한 높은 책임의식과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한국적 특수성, 다시 말해 분단이라는 상황과 그에 따른 반공 이데올로기 공세로 인한 레드컴플렉스 등으로 기층운동이 활발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4.19라는 역사적 경험과 계급 구조의 미분화, 도시화, 교육열 상승이라는 어떻게 보면 '왜곡된 근대화'라는 것들이 학생들이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들을 형성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대학이라는 것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의 이러한 모습들은 점차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이 대학자율화 정책 등으로 인하여 대학의 정원이 대폭 상향 조정되었고, 대학의 숫자도 대폭 늘었습니다. 또 전문대, 산업대, 방송통신대 등의 다양한 형태의 대학이 늘어갔고 대학은 점점 비대해지고 다층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대학의 변화가 80년대 중반에는 운동의 양적상향된 과잉된 지식인 집단이 운동권과 결합하면서 운동의 큰 성과를 이룩하게 되고 운동을 당연히 졸업 후까지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점차 고등교육의 대중화라는 구조적 변동과 87년 6월의 표면적 성과 등등의 사회의 변동과 함께 90년대에 들어와 대학생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동 속에서 대학의 위상은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도서관에서 취직 공부에, 고시준비에 열을 올리는 선배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사회에 대해 다소 무관심해지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대학의 양적 확대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대학생들이 양상 되었고, 대학은 더 이상, 출세의 담보가 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대학에 와서도 끊임없이 취직준비에 열을 올려야 하고 고시준비에 바쁘게 된다. 대학은 더 이상 '특권적'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특권층', '엘리트', '민중적 지식인'이라는 대학생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어느 정도의 선(컴퓨터와 영어회화, 우수한 성적 등등)의 충족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지식인', '엘리트'로서의 민중에 대한 책임, 지식인의 역할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게 된다. 우리 사회의 특성상 중간계급 이상을 바라보고 대학에 온 많은 학우들이 기존의 자신의 존재, 즉 배경 조건들을 부인하고 중간계층 이하의 삶을 지지하고, 스스로 자신의 사상을 쫓아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적어진 것입니다. '지식인'이라는 동질감이 다양한 계급의 구성원들이 더욱더 혼재되고 지역적 다양한 분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됨에 따라, 이제는 '지식인'으로서의 대학생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만 남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대학생의 자기 인식의 변화는 기존의 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운동의 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90년의 시대상황과 결합하여 더욱더 급격히 변하게 됩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마르크스는 우리의 화려한 경제성장 뒤에 숨어 이 사회를 좀먹고 있는 시궁창의 쥐들을 조명하고 학생운동이 서 있는 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학생운동은 바로 그 속에서 혁명과 사회의 발전을 과학적으로 논할 수 있었고, 모순된 사회 현실을 폭로하는 기준점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권이라고 불리는 구소련과 동구권의 갑작스런 몰락이라는 상황 속에서 대안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명확한 이념적 좌표의 상실을 가져왔습니다. 즉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좌표를 가지고 그것을 대중화하기 어려워졌다. 분명한 계급적 위치가 없는 학생이라는 신분의 한계 상,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희석화는 그 이념에 의해 자신의 길을 택하고 있던 대학인들에게 극심한 혼란과 회의감을 조장하기 충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가 탄생하게 되었고 과거와 달리 이제는 더 이상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먹혀 들어가지 않게 되고, 민주화 요구들이 문민정부 초의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명목 하에 실시된 과거청산과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80년대와 같은 정권에 대한 직시적인 비판이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96년도 연대사태와 최근의 한총련 출범식 과정에서 벌어진 한 젊은이의 죽임이라는 상황 속에서 학생운동은 점차 고립화되고 과거의 역량들마저 상실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동과 입사와 고시 준비라는 상황 속에서 '민중 속으로', '민중을 위해'라는 말들이 '내가 왜?'라는 단 몇 마디에 무참히 무너지게 된다. 자식인으로서의 동질감이 사라진 자리에 자신이 자라 온 환경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잘 사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자신을 포기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운동은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된 것입니다. 이러한 대학 내의 모습들과 그것을 반영시키지 못하고 과거의 '낡은전통'에 묶인 학생운동 진영의 그릇된 문제인식이 소위 말하는 학생운동 위기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극서이 이번 한총련 출범식문제로 지난 연대 사태로 표면으로 돌출된 것 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대학의 현실을 살펴보면, 운동과 사회에 관해 무관심과 운동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들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카렌다식의 운동, 선거 때 특히 더 강하다 못해 소모적 논쟁이 되어 버리는 정파성,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낡은 담론들만을 문제화시킨다고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이번 한총련 출범식에서 발생한 상처는 너무나도 컸고, 그에 따른 사회전반의 비판 아닌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회에 대한 반감과 무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학생회 자체가 관료화되는 경향을 지금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 학우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 선후배 사이 등의 인맥 관계에 묶이는 경향을 띄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 대학의 변화와 대학생들의 인식의 변화를 학생회라는 것이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학생회라는 공간이 일부 운동권 학우들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생회는 어떻게 하면 좀더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들의 입장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에만 집착하고 있다. 결국 정치를 위해 학생회로 다시 돌아온 학생정치 조직들은 머리 속으로 정치를 되뇌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조합조직을 외치는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우들이 원하는 것은 추상적인 정치투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느끼는 모순들을 일순할 수 있는 대안 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생회가 학우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학생들이 가장 불편하다고 느끼는 문제의 해결을 언급하고 그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주장이 일반학우들에게 설득력이 있었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학생회가 아닌 학생사회에 대해 말할 때'라는 인식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학생회는 학생사회의 자율적 질서의 유력한 매개자로서만 그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학생대중은 점차 자신의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운동을 모색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취미모임, 전공공부모임, 사회진출모임 등으로 분화되어 가고 있고, 더 이상 전체학우들이 정치적인 문제를 통해 설득되지 않는 것이 이들의 견해이다. 따라서 학생운동은 이러한 학우대중이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소진지'를 중심으로 그들 각자 삶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소진지들이 학생회의 내용과 구조로 이어져야 하며, 단지 학생회로의 종적 편입만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내용상 서로에게 수렴될 수 있도록 노력이 절실한 것입니다.
1997년 한총련 출범식을 계기로 정권에게 기사회생의 길을 제시해 주었으며 모든 진보 진영에게 탄압의 총대를 돌리게 했다. 더 나가 과연 학생운동은 지속되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을 던져 준 것이 외에는 스스로의 고립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이후의 대응 방식은 기존의 활동가라 불리는 이들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더이상 학운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던지, 한총련이라는 거대 사냥감을 포식하며 이파적인 움직임들을 가져가던지, 시대의 구 유물과 더불어 그 운명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구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더 문제시되는 것은 가뜩이나 학대중의 운동에 대하 다양한 접근들을 차단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대학사회내에 비운동권이라는 환상들이 상존합니다. 즉 비운동권은 운동권보다 더 나름대로 조합주의적 학생회운영에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운동권 학생회나 운동권학생회와 마찬가지로 그 한계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비운동권이라해서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못하는가? 그리고 비운동권 학생회라 해서 언제나 도덕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운동원 학생회는 그 나름대로 자신들의 탄생에 대한 기반들이 존재하기때문에 그 활동 범위가 좁혀질수있다는 한계가 뚜렷하며, 역시 참여가 이루어지지않을 경우 기존의 학생회와 별반 다른점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의 대안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화두에 대해 우리는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위를 넘어, 이것이 이 서강땅 안에서 대안 창출이라는 계기가 되어질 수 있다면,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서강 학생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둘것이고 이러한 대안들을 실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1) 학년 학생회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학생회를 해체하고 학년학생회를 건설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의 지방대에서는 이 학년학생회가 서울과는 달리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학년 모여 뭐하자라는 말이 나돌때, 구성원들이 참여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것은 단지 학년 학생회라는 명칭때문은 아닙니다.
학년 학생회에서는 학번 학생회와는 달리, 각 학년별로 문제시 되는 사항들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얘기를 할수있으며, 풀어 나갈 자리가 될 수 있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4학년의 경우 취업이냐? 진학이냐라는 기로에 서 있을때,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총화하여,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학생과에 제안하여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나름대로의 시기에 맞는 다양한 요구들은 상위 학생회에서 제대로 반영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학년 학생회가 그러한 이해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잇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내의 흘러다니는 담론들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중립적인 설문기관과 정기적인 토론회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설문조사의 경우, 그 조사의 방법들이 다소 작위적일 수 있으며, 비과학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위해 상설 설문 기관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학내의 담론들을 공개적인 형태로 드러내기 위해 한달에 한번 내지는 학기에 한번 등의 정기적인 토론회를 제시합니다. 아직 한국사회, 그리고 대학사회라는 곳은 토론문화가 제대로 꽃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문제에 대해 한단체나 몇사람의 지혜로 해결하려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토론회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3) 학회의 전문성과 방향성들을 강화하기 위해 학회연합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학회의 가장 큰 문제거리는 1,2학년 대상의 세를 하다보면, 학회가 새내기를 위한 단체로 전락하는 경우가 잇습니다. 앞써 얘기했듯이 학회는 그 목적성이 있기때문에 나름대로의 화두를 가지고 좀 더 전문적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 학회를 바라보았을때, 고학번(3,4학년)들이 부재하다는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고학번들은 학회에서 더이상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시간이면 자신의 전공공부나 취직준비를 하는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회연합이라는 틀거리로 커리뱅크를 구축하고, 고학번들의 세미나를 기획하고, 각 학회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서강이라는 공간안에 소통시켜, 각학회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4) 동아리 연합회의 실질적 위상을 확립하고 그 방향성에 대해 각 동아리들로부터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동아리 연합회는 하는 일들은 많지만 실지 각동아리들의 요구나 교류에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기구가 아닌 실질적으로 각 동아리들의 내적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학생회를 학우들에게 돌려주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지금의 한총련 문제는 어찌보면 학생운동 세력들의 학생회 장악에 어는정도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학생운동이 해야하는 역할과 조합주의적 학생회의 역할이라는 두가지 직무를 수행해내기에는 너무나 힘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학생회 운동과 학생운동의 결별 시기가 도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총학생회, 혹은 단대학생회 중심의 학생운동에서 학생운동 자체와 학생회 운동이 분화되어 학생회 운동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그리고 어떻게 제대로 대변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중심에 두고 전환하며 학생운동의 일부분으로 자리잡는다. 이보다 더 큰 의미로써의 학생운동으로 이미 맹아를 보이고 있는 자치 운동과 여성, 환경, 동성애, 미디어 등에 대한 주제 운동이 확산되고(물론 현재의 전반적인 학생운동의 침체가 극복되어야 하겠지만) 광범위해 져야 합니다.
신문에도 나왓었는데 ㅋ
이럴때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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